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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장 작은 학교의 기막힌 반장선거 이야기

Life/육아일기

by 하얀잉크 2013. 3.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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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반장(회장)만들기 급 프로젝트

 

3월이 되니 그렇게 춥던 겨울바람도 잦아들고 봄 기운이 솟아납니다. 겨울잠을 자듯 고요하던 학교들도 새학년 새학기를 맞아 다시 활기가 넘칩니다. 저는 다시 출근길에 2학년이 된 딸아이의 손을 잡고 등교를 시켜줍니다.

 

딸아이는 서울에서 가장 작은 교동초등학교에 다닙니다. 120년이 된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이기도 하지요. 지난 월요일 입학식에는 19명의 신입생들이 입학해 새로운 가족이 되었습니다. 학부모들은 지난해보다 신입생이 늘었다고 입을 모았지만 언론에서는 19명밖에 입학하지 않았다며 기사가 났습니다. ^^ 올해는 교육감이 참석해서인지 기사도 많이 났네요.

 

 

<학교 운동회 모습>

 

 

그러던 며칠 전 등교길에 딸아이가 회장선거에 나가려 하는데 어떻게 소견 발표를 할 지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회장선거? 요즘은 반장을 회장, 부반장을 부회장이라고 부릅니다. 언제냐고 물으니 바로 1교시에 선거를 한다고 합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일단 아이에게 왜 회장이 되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싸우는 친구들은 화해하게 하고 떠드는 친구들때문에 힘들어하는 선생님을 돕고 싶다며... 평소 선생님이 장래희망인 아이가 거침없이 이야기 합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등 떠밀려 한 적은 있어도 스스로 반장이 되고 싶다고 나선 적 없는 아빠와는 달리 스스로 반장 아니 회장이 되겠다고 나선 것도 대견스럽지만 그런 딸의 마음을 이제야 안 것이 무척 미안해졌습니다.



 

 

마케터 아빠가 코치해 준 연설문의 비밀

 

등교길에 연설문을 만들고 그것을 숙지하려면 정말 시간이 없어 대략 5분만에 혼신의 힘을 쏟아서 연설문을 완성했습니다. 어차피 내용이 길어지면 아이가 숙지하는데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어필할 수 있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함께 1년동안 공부하게 된 OOO입니다. 

제가 회장이 되고 싶은 이유는 저는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친구들에 대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 OO이, 한자를 잘아는 OO이, 재미있는 OO, 옷을 단정하게 입는 OO....(중략)

저를 회장으로 뽑아주신다면 친구들을 잘아는 제가 선생님을 도와 열심히 우리반을 이끌겠습니다.

 


대략,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아이다운 연설문이죠.

하지만 이 안에는 짧은시간 마케터의 고뇌와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ㅋㅋ 


먼저, 1학년에서 그대로 같은 반 친구들이 올라갔기 때문에 아이들끼리는 서로 친하다는 것이 일반학교와 다른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고 선생님께는 도와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전달한 것이죠.

 

무엇보다 표를 획득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친구들의 이름을 직접 불러주는 것을 택했습니다. 이 연령층의 아이들은 자신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상승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자신이 잘하는 것을 꼭 집어 이야기 해주니 기분이 더욱 좋겠죠. 같은 반 친구들을 모두 언급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과반수를 넘길 수 있는 인원을 기준으로 그 중에서 딸아이와 친한 친구들을 중심으로 선별했습니다.

 

이정도면 완벽하지 않나요? 이왕 출마하는 거라면 당선되면 좋잖아요 ^^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계없습니다. 1학년때 공개수업 모습>

 

 

 


예상치 못한 반전 속 기막힌 선거이야기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하교시간도 지났는데 전화가 없습니다. 만약 회장이 됐다면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오고도 남았을텐데 말이죠. 조급한 마음에 제가 먼저 연락을 하니 혹시나 했던 것이 정말 똑 떨어졌다고 합니다.

 

해맑은 아이들 세계에는 노련한 마케터의 전략도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사실 이번 전략에는 커다란 허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경쟁상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죠.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기본적으로 마케팅에서는 타겟분석은 물론 경쟁사 분석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선거 당일 후보자 등록을 받는 아이들 선거다 보니 상대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셈이죠.

 

그 상대는 실로 예상치 못할만큼 놀랍고 강력했습니다.

딸아이의 반 친구들은 모두 15명입니다. 그런데 회장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자가 총 14명.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아이들이 출사표를 던진 것이죠. 이것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습니다. 교동초등학교가 열린교육으로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정도일 줄이야 ㅎㅎ 그 말에 듣고 크게 웃었네요.

 

결국 4표를 얻은 친구가 회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딸아이는 쏘~ 쿨하게 2학기에 다시 도전하겠다며 부회장 후보는 고사했다고 하네요. 퇴근 후 귀가하며 혹시나 아이가 기죽지는 않았는지 걱정이었는데 해맑은 얼굴을 보니 그야말로 기우였습니다.

 

회장으로 선출되든 안되든  당락의 과정을 통해 아이가 성숙해지기를,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배우길 바랄 뿐이었는데 오히려 동심을 통해 제가 한 수 배우게 됐습니다.

 

 

<딸아이와 학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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