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서민의 마이카 시대를 열어 준 나노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인도서민차 나노(Nano). 2009년 3월 인도 타타그룹에서 당시 10만 루피 우리돈 240만원에 불과한 나노가 처음 출시되었을때 업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의 가치를 깎아내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카오디오는 물론, 에어컨도 없어 불편한 차, 파워핸들도 채택하지 않고 모든 것이 수동인 차. 여론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식의 값 싼 이유를 두고 나노를 폄하했다. 그리고 자동차 시장을 빼앗길까 걱정된 굴지의 자동차 기업들이 서둘러 초저가 차량개발에 들어갔다.
Photo (cc) by Scalino / flickr.com
나노가 세계 자동차 트렌드에 한참 떨어지는 자동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으로 나노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세계2위의 인구대국 인도. 11억이 넘는 인도의 인구 중 빈곤층이 8억 명이 넘는다. 하루 소득이 2달러 이하 빈곤층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에서 자동차는 부의 상징이다. 고작해야 자전거나 스쿠터를 타는 것이 서민들이다.
어느 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부부가 젖먹이 아이까지 스쿠터에 태워 위태롭게 가는 모습을 본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이 서민들도 탈 수 있는 차를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나노이다.
5명에 불과한 기술자 팀은 좀 더 좋은 기능을 갖춘 차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좀 더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차를 만들었다. 차체를 강화 플라스틱이 아닌 강판으로 만들고 와이퍼도 하나로 줄였다. 고속도로가 발달되지 않은 인도에서 70마력 이상의 차는 사치였다. 오토바이에 주로 쓰이는 2기통 엔진을 탑재해 최고 출력 35마력으로 줄이고 더 많은 인도인에게 보급하기 위해 편의장치도 최소화했다.
"수 십년째 운전을 하고 있는데 한번도 내 가족들을 위해 운전해 본 적이 없다. 만원버스와 자전거만 타 본 아내를 위해 자동차를 사고 싶었는데, 나노가 그 꿈을 이뤄줄 것이다"
나노는 평생 남의 차 운전기사로 살아 온 판두량 씨에게 마이카의 꿈을 꾸게 했고, 출시되자 20만대 선주문이 들어왔다.
Photo (cc) by counterclockwise / flickr.com
자이푸르 풋(Jaipurfoot), 가난한 이에게도 희망의 다리를
인도에 살고 있는 열 네살 된 빌 하난은 맨발로 생활하던 생활습관 탓에 상피병에 걸려 한 쪽 무릎아래 다리를 절단했다. 한창 공부하고 뛰어놀 시기에 빌 하난이 잃은 것은 다리 하나뿐이 아니었다. 꿈을 잃었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가족들은 빌 하난에게 알맞는 의족을 사주고 싶었지만 무려 2만 달러가 필요했다. 하루 2달러를 벌어 근근히 살아가는 빈곤층 가족에게 꿈도 꿀 수 없는 사치품이었다.
하지만 빌 하난은 그에게 꼭 맞는 새로운 다리를 얻을 수 있었다. 자이푸르 풋(Jaipurfoot) 덕분이었다. 그는 예전처럼 친구들과 나무를 오르내리기도 하고 점프를 할 수도 있다. 달리기는 물론 1Km를 4분 30초만에 돌파했다.
인도의 북부마을 이름을 딴 자이푸르 풋의 기술혁신은 2만달러에 달했던 의족을 단 28달러 우리 돈 약 3만원에 가능케 했다. 주로 고무와 나무, 알루미늄으로 구성되었지만 1.3~1.5kg에 불과하며 5년 이상 지속하여 사용할 수 있다. 보통 의족의 제작기간이 하루 이상 소요되는 것과 달리 3시간 이내로 고객에 맞게 맞춤제작이 가능하다.
자이푸르 풋은 빈곤층과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전쟁지역에서 지뢰로 다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타임지가 선정한 최고발명품에도 이름을 올린바 있는 자이푸르 풋은 매년 16,000명에게 새로운 팔과 다리를 제공하고 있다.
새롭게 조명받는 적정기술
소외된 90%를 위한 기술을 적정기술이라고 한다. 기술의 혁신이란 상용화에 성공은 물론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1960년대 등장한 다수를 위한 기술 적정기술이 자본주의를 성찰하는 국제사회분위기에 맞물려 최근 다시 조명받고 있다.
"차세대 혁신을 이끌 제품은 공존이라는 서로 다른 요소를 하나로 융합시킨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다"
지난 5월 24일 막을 내린 서울디지털포럼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는 인간과 기술의 공존을 강조했다. 올해 서울디지털포럼의 주제는 '공존- 기술, 사람 그리고 큰 희망'이었다. 현대 적정기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폴 폴락 박사도 초청됐다.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풍요롭게 인도해왔다. 하지만 그것이 인류 전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이 열린 스위스 다보스에는 회의 내내 '1%가 아닌 99%를 위한 정책'을 호소하는 시위가 열렸다.
세계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30억 명 이상이 하루 2달러로 생계를 유지한다. 지금 인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첨단 기술이 아닌 소외된 90%를 위한 기술 즉, 적정 기술이다.
* 이 글은 Benefit Magazine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에디터 김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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