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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 마지막회 결말보다 충격이었던 한명회의 등장

문화 리뷰/TV 연예

by 하얀잉크 2011. 12.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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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가 24회를 마지막으로 아쉬운 막을 내렸습니다.
한글창제를 위한 세종의 고뇌를 들여다 볼 수 있어 즐거웠던 드라마는 결국 세종의 뜻대로 한글창제의 반포에는 성공했으나 그가 아끼던 이들과는 모두 이별해야 하는 쓰디쓴 결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한글창제에 있어 누구보다 혁혁한 공을 세웠던 소이(신세경), 끝까지 세종을 지켰던 아니 담이가 소망했던 모습을 보기 위해 버텼던 똘복이 채윤(장혁) 그리고 세종과 러브라인이라는 말까지 무성했던 그의 호위대장 무휼까지 개파이(카르페이)의 공격을 막아내다 세종의 곁을 떠났습니다.

사실 채윤과 소이는 그들이 꿈꿨던 소망대로 결혼해 아이 잘낳고 사는 해피엔딩이 되길 원했지만 홀로 고독해지는 세종을 그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한가놈의 실체가 한명회?!


 

하지만 마지막회 결말보다 더 신선한 충격은 바로 한가놈이었습니다.
밀본의 본원 정기준의 참모로 지략을 펼쳐왔던 그가 정체를 드러냈으니 바로 역사 속의 인물 한명회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드라마 결말에서 심종수가 밀본의 새로운 본원이 되었다는 내용을 보며 굳이 필요한 내용이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심종수와 한가의 대화 장면을 보는 순간 아차 했으니 한명회를 위한 분량이었던 것입니다.

심종수는한가에게 어렵게 자리를 만들었으니 수양대군 옆에서 재상총재제를 실현하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 말을 듣는순간 떠오르는 이가 한명회였는데 생각해보니 한가놈이 한 씨 성을 가졌지 뭡니까? 아니나 다를까 심종수는 그의 본명을 묻고 씨익 웃으며 대답하길 "한명회입니다"... 소름이 끼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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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인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명회가 누구인가요? 수양대군 즉, 세조를 도와 왕위를 찬탈하고 단종을 옹호하는 충신들을 죽여 사육신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그 사육신의 주축이 바로 세종이 아꼈던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들이었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었기에 드라마 말미에도 한명회와 성상문, 박팽년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집니다.
한명회와 어깨를 부딪힌 성삼문은 이상한 느낌을 받고 한명회는 집현전을 박살내버리겠다고 다짐을 하죠.

물론 이런 내용들은 작가가 만들어낸 상상력에 의한 조합이겠지만 한명회가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했다는 사실이나 일찍 부모를 여위어 혼자 살았다는 사실을 세심하게 녹여내 만든 한가의 캐릭터에 감탄하게 됩니다.

 

 

한명회, 그는 누구인가?

역사 속의 한명회에 대해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415(태종 15)~ 1487(성종 18).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 할아버지는 예문관제학 상질(尙質)이고, 아버지는 증영의정(贈領議政) 기(起)이며, 어머니는 예문관대제학 이적(李?)의 딸이다. 딸이 예종비 장순왕후(章順王后)와 성종비 공혜왕후(恭惠王后)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고 권람(權擥)과 더불어 산천을 주유했다. 1452년(문종 2) 문음으로 경덕궁직(敬德宮直)이 되었다.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首陽大君)과 의기투합하여 무사 홍달손(洪達孫) 등 30여 명을 추천했다. 1453년(단종 1) 10월 수양대군이 김종서(金宗瑞)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 계유정난 때 심복 참모로서 큰 공을 세워 군기녹사(軍器錄事)에 임명 되고 수충위사협책정난공신(輸忠衛社協策靖難功臣)의 호를 받았다. 곧이어 사복시소윤(司僕寺少尹)이 되었다가 1454년에 승정원 동부승지가 되었다. 1455년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좌부승지로 승진했으며, 그해 가을 동덕좌익공신(同德佐翼功臣)의 호를 받고 우승지가 되었다. 1456년(세조 2) 단종복위운동을 좌절시켰으며, 사육신의 주살(誅殺)에 적극 협조했다. 이어 좌승지·도승지를 거쳐 1457년 이조판서·병조판서가 되었고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졌다. 1459년 황해·평안·함길·강원 4도의 체찰사(體察使)가 되었으며, 1461년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에 봉해지고 판병조사(判兵曹事)를 겸했다. 그뒤 우의정·좌의정을 역임하고 1466년 영의정에 올랐으나 곧 병으로 사임했다.

출처- 위키백과


무려 30여년을 주요요직에서 숱한 활약과 일화를 남긴 그입니다. 그래서 그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여러차례 방영된바 있습니다.

 


결말에 한명회를 등장시킨 작가의 의도는?

그렇다면 작가는 왜 역사적 인물 한명회를 마지막에 끼워 넣었을까요?
극의 흥미를 불어넣기 위해서? 물론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이 장면으로 인해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고 한명회가 검색어로 오르기도 했으니까요. 그만큼 드라마의 흥을 돋우었다는 반증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세종의 작품 우리 글 한글이 그 뒤로 그리 순탄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정기준이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이미 백성들 사이에 번져나간 한글의 운명은 탄탄대로여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입니다.

 

실제 세종을 이은 문종은 단명하게 되고 뒤이어 적통으로 오른 어린단종을 쫓아내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조선왕조는 또한번의 피바람에 휩싸이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선비들 사이에서는 심종수가 부르짖듯 여자들이나 천것들이 배우는 글 따위로 한글을 전락시킵니다.

작가는 세종의 숱한 고뇌 속에 탄생한 한글을 껴안지 못했던 역사의 아픈 부분을 언급한 것이 아닐까요?
 

아무쪼록 그동안 뿌리깊은나무...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등장한 한석규, 연기대상 노려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꺄울~ 다음 메인 장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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