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추첨보다 공정해! 국립초등학교의 뜨거웠던 신입생 추첨 현장

살 떨렸던 초등학교 신입생 추첨 현장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지난 16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의 신입생 추첨식에 다녀왔습니다. 어느 덧 첫 아이가 내년 초등학교에 진학하는지라 아내가 꼼꼼히 준비해 입학신청을 했었답니다.

그런데 무려 경쟁률이 23대 1. 1,100여 명이 지원했는데 선발인원은 48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경쟁률이 높냐구요? 바로 서울사대부초가 국립초등학교이기 때문입니다.

국립초등학교란?

국립초교는 서울대 사범대학 부설초교와 서울교육대학교 부설초교 등 서울지역 2개 학교를 포함해 전국에 모두 17개가 있다. 사립의 장점과 공립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으니 최상의 조합이 바로 국립 초등학교이다. 공립초교처럼 학비 부담은 없으면서 사립초교 못지않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국립초교인 것이다.
국립초교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총괄하며 교육대학과 일부 국립대 사범대학의 부설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국립초교는 여러 장점을 지닌 학교다. 실험연구학교 및 실습학교로 불리는 만큼 국립초교 학생들은 일반 교과과정 외에도 최신 교육기법이 반영된 시범수업을 받을 수 있다. 공립초교에서는 보기 힘든 최신 기자재도 흔히 접할 수 있다. 수행평가와 학업성취도평가도 국립초교에서 먼저 실시한 뒤 일선 공립초교로 내려보낸다.
국립초교의 입학 방법과 교육 프로그램 등은 사립초교와 비슷하다. '선지원 후추천'으로 학교가 자리한 지방자치단체 전 지역이 학군이기 때문에 누구든 지원이 가능하다.

 

 

국립초등학교도 있나요?

국립초등학교가 생소한 분들도 있으시죠? 사실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답니다. 매년 경쟁률이 이처럼 높은 것은 서울에 단 2개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립초등학교와 중복지원이 가능해 이왕이면 수업료가 무료이고 교육의 질이 높은 국립초등학교에 몰리기 때문입니다.

서울사대부초는 대학로 인근 옛 서울대 법대자리에 자리해 있답니다. 복도에 들어서니 정겨운 초등학교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초등학교는 괴로웠던 중고시절에 비해 늘 즐거웠던 추억만 있어 추억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앙증맞은 책상과 의자도 정겹습니다. 지금은 개인책상이 따로 있지만 우리 어릴때만 해도 짝꿍과 함께쓰는 나무책상에 금을 그어놓고 넘어오면 내꺼라고 알콩달콩 싸우곤 했었죠 ㅋㅋ

참 이렇게 추억에 빠져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 딸 꼭 추첨에서 뽑히게 해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입니다. 입학 접수를 했더라도 현장에 출석하지 않으면 무효 처리된답니다. 실제 저희 교실에도 한 분이 오지 않아 추첨 자격을 상실하셨습니다.

 

추첨식 주의할 것은

추첨하기 전 입실한 교실의 풍경입니다. 접수번호 1번부터 200번까지는 추첨이 진행되는 체육관에 입실할 수 있지만 200번 이후부터는 이렇게 교실에 나뉘어져 TV로 진행되는 추첨식을 지켜봐야 합니다.

교실 앞 칠판에 추첨식의 진행순서가 적혀있고 좌측 TV에서는 학교의 연례행사나 아이들의 활동모습이 담긴 영상을 틀어주셨습니다. 서울사대부초의 특징이라면 아이들이 교복을 입는다는 것이죠.

제 접수번호는 587번!

자신의 번호에 맞는 교실(200번까지는 체육관)에 들어가 접수를 해야합니다. 이때 반드시 접수자의 신분증이 있어야 합니다. 엄마가 접수를 했는데 아빠가 참석한다면 엄마의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는 것이죠. 자리도 한 자리밖에 준비되지 않기 때문에 보호자 1명만 참석할 수 있습니다.

 

로또추첨 보다 뜨겁고 공정한 추첨방식에 기가막혀

1시30분까지 입실을 완료 하고 1시45분부터 추첨이 시작됐습니다. 사실 접수하긴 했지만 추첨에 대한 기대가 크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추첨이라고 해도 그 결과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때문이었습니다.

월드컵 조 추첨에 대한 조작 의혹이나 로또 추첨에 대한 의혹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사실 유로파 챔스리그에서 조 추첨을 조작한 것이 발각되어 주최 측이 곤혹을 치룬 적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니 초등학교 입학 추첨인데도 공명정대한 추첨을 위한 절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1. 먼저 추첨이 시작되자 담당선생님이 위 사진에서 보듯 접수번호가 적힌 주황색 공을 나눠줬습니다. 이를 보호자가 10분동안 가지고 있다가 그룹별 가장 앞 번호 보호자가 추첨공을 걷습니다. 이때부터는 담당선생님도 추첨공에 손을 댈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10분동안 자신의 추첨공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면서 그만큼 의혹을 방지하려는 학교 측의 노력입니다.

2. 그룹별 대표 2명이 추첨공을 가지고 모두 모이고 공을 추첨함에 넣는 순서를 정합니다. 이것은 추첨함에 공을 넣는 순서에 따라 불리해질 수 있다는 항의가 있어 추첨함에 공을 넣는 순서도 추첨하게 되었다는 학교 측의 설명입니다. 정말 대단한 부모 위에 대단한 학교입니다. ^^

3. 추첨한 순서에 따라 그룹별 대표들이 추첨공을 추첨함에 넣습니다. 추첨함은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투명한 원통입니다. 대표들이 추첨함에 넣을때도 규정이 있습니다. TV중계로 추첨식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들을 위해 한치 의혹이 없도록 투명봉투를 보여준 뒤 공을 넣고 빈 투명봉투를 다시 카메라를 향해 보여줘야 합니다.

4. 그렇게 추첨공이 모두 추첨함에 모이자 자동으로 공을 섞습니다. 버튼을 누르자 스티로폼 볼이 마구 원통 속에서 뒹굴며 섞입니다. 추첨을 통해 공을 넣었지만 조금이라도 불만을 없애기 위해 섞는 것인데 세 번을 섞은 뒤 부모들을 향해 더 섞고 싶다는 분이 있으면 얘기를 해달라고 합니다. ㅎㅎ

5. 추첨하기에 앞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번호들도 정리해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89는 거꾸로 보면 68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밑줄을 그어 표시되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상되는 모든 경우에 대비한 모습을 보니 의혹은 사라지고 신뢰가 가더군요. ^^

6. 드디어 추첨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닙니다. 첫 번째로 교장선생님이 나오셔서 하나를 뽑으셨는데 안대를 착용하고 겉옷탈의에 소매까지 올려붙여놓고 손으로 다시 한번 공들을 섞은 뒤에야 뽑으셨습니다. 마치 무슨 의식하는 모습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뽑힌 공은 카메라에 클로즈 업이 되고 옆에 놓은 화이트보드에 번호가 적혔습니다.

 

처음 뽑혔기에 수석입학생이라 하더군요. 그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긴장이 누그러지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릴레이로 48명 아니 예비합격자 5명까지 53명의 번호가 불렸습니다.

번호 하나하나가 불릴때마다 엄마들은 숨을 죽이고 자신의 번호가 불리길 기원했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요. 585번이 불리었을때는 정말 아쉬웠습니다. 자신의 번호가 불린 엄마는 기뻐하다가 이내 주위를 의식해 속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박수도 보내줬지요 ^^

그렇게 제 아이 번호는 불리지 않은 채 끝이 났습니다. 아쉬운 맘을 뒤로 한 채 일어서야 했지만 그래도 추첨에 대한 의혹이나 불만은 전혀 없었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공정함을 보여준 추첨이었기에 깨끗이 승복할 수밖에요 ^^ 절차는 무척이나 복잡했지만 지금까지 보아 온 어떠한 추첨보다 공정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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