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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으로 피해입은 아이티의 축구영웅, 파브리스

아이러브스포츠/축구

by 하얀잉크 2010. 1. 1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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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도제도의 조그마한 섬나라 '아이티'. 우리에게 생소하기만 아이티가 강진으로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어설거라 한다. 인구 70%가 하루 2달러로 연명하는 극빈국이기에 이번 피해가 더욱 컸고 제대로 인명구조조차 되지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번 강진으로 폐허가 된 자국을 구하기 위해 분주히 뛰는 재단이 있다. '파브리스 노엘 재단' 아이티의 축구영웅 파브리스 노엘이 그의 이름을 딴 구호재단인데 놀랍게도 그의 나이 아직 서른도 되지않았다.

아직도 미래가 창창한 그가 벌써 재단을 설립해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젊은나이에 호날두나 메시만큼 대스타가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만큼 부을 축적해서?

아니다. 정답은 그의 나라 아이티의 현실에 있다. 아이티의 축구영웅 파브리스 노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신은 나에게 축구를 주었다.
  그러나 그 축구는 나의 형제와 부모님을 빼앗아 갔다"

 

서인도제도의 섬나라 “아이티”의 축구선수 “파브리스 노엘”(1985년 아이티의 그레시에르출생)은 그가 9살이 되던 시절만 해도 10년 후에 자신의 부모님과 가족이 총격을 받고 세상을 떠날지는 상상도 못했을것이다.

파브리스는 아이티에서 레전드급의 축구선수다. 어린시절부터 특출난 재능을 보여준 파브리스는 이미 14살의 나이에 아이티축구리그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두 클럽 중 하나인 라싱클럽 아이티엔에 입단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아이티의 대통령궁을 방문해 레네 프레발 대통령을 만나기도 한 아이티가 자랑하는 영웅 중의 영웅이다.

8살에 축구공을 선물받은게 처음이라는 파브리스, 가난한나라 아이티에서 축구공을 선물받았다는것은 굉장한 일이었으며 그런 공을 보면서 파브리스는 축구를 통해 가족들을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줘야겠다고 결심한다. 어린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가득찬 노엘은 고향인 그레시에르에서 40km나 떨어진 수도 포르토프랭스까지 왕복하면서 어려운 선수생활을 시작한다.

미국본토에서의 활약을 원했던, 그는 2002년에 원하던 약속의 땅, 미국에 도착한다. 당시 19세였던 파트리스는 “이제서야 가족들이 가난에서 벗어날수 있게되었다.”라고 하면서 기뻐했지만 뜻하지 않은 비보가 그를 찾아온다.

미국으로 온지 얼마 후에 그의 어머니와 두 형제가 괴한으로부터 머리와 가슴에 총격을 받고 사망한것이다. 뒤늦게 숨진 가족을 본 파트리스는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그는 집에 있는 우체통을 열어봤는데 괴한들은 그에게 이런 메모를 남겼다. “너의 가족들은 우리가 다 죽였다. 너 역시 우리가 찾아내어 죽일것이다.”라고 말이다.

축구를 원망한적도 많았으나 결국 그는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플로리다의 팜비치 고교에 입학한 파브리스는 주전으로 뛰면서 19경기에서 58골이나 기록하는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다. 당시 그를 가르친 감독은 파브리스에 대하여 ‘프레디 아두보다 더 빠르다”라고 말하면서 극찬, 후에 이 선수가 굉장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그가 성인무대 즉 MLS(메이저리그 사커)에 데뷔하게 된 것은 2005년의 일이다. 당시 콜로라도 라피드의 감독이었던 “페르난도 클라비호”는 파브리스의 재능을 눈치채 일찍 그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클라비호는 “축구는 너와 같은 처지를 가진 가족들을 구할수도 있다.”라고 말하면서 프로데뷔를 권유했고, 파브리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2005년 산호세 스퀘이크전을 시작으로 MLS축구선수로의 생활을 시작한다.

 “어린시절의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조국의 아이들을 위해 설립한 '파브리스 노엘 재단'

 
솔트레이크와의 경기에서는 첫번째골을 성공시키면서 점점 실력과 명성, 그리고 부를 얻게된 노엘, 그러나 그는 자만하지 않고 클라비호감독이 자신에게 처음으로 했던 말을 잊지 않았다.

몇 년 후에 그는 “파브리스 노엘 재단”을 만들어 아이티에 있는 어려운 가정들을 돕는 구호기금을 마련하는 선행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2006년, 그가 23살이 되던 해에는 아이티대표팀에 발탁되어 과테말라와의 A매치에 처음으로 데뷔하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이 후 콜로라도에서 주전경쟁에 실패한 파브리스는 메이저리그사커 2부리그팀인 푸에르토리코의 “푸에르토리코 아이슬런더스”에 입단하는데 이 곳에서 파브리스는 단숨에 주전을 차지했고 8골을 기록하면서 팀을 우승으로 견인한다.

어릴때 가져보지 못한 부와 명예를 안게 된 파브리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어렸을적의 가난을 잊지 못하고 있고 그렇기에 아이티의 가난한 소년들을 위해 아낌없이 그가 모은 재산을 쾌척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어렸을 때 몇센트의 공도 사기 어려웠던시절의 가난을 잊지 않고 있으며 늘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린시절의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그의 조국 아이티가 이 아픔을 딛고 빨리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상처를 받았을 파브리스도 더 큰 성공으로 조국에 큰 힘을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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