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무한도전의 '의좋은형제'를 보며 김태호 PD의 마르지 않는 아이디어 샘물에 감탄했었다. 멤버들간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멋쩍어 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통해 예능감을 놓치지 않는 연출력은 무한도전이 왜 장수프로그램인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일요일 박찬호 특집의 1박2일은 하루 전날 훈훈했던 무한도전의 기억을 송두리째 앗아갈만큼 강력했다. 그것은 연출되지 않은 멤버들간의 끈끈한 동료애와 무한한 용기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예상대로 1박2일은 시청률 40%를 넘어서며 예능 최강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드라마 강국 대한민국에서도 40%의 벽을 넘기란 힘겨운데 예능프로그램으로 40%라니... 정말 놀라울 뿐이다.
1박2일 박찬호 편의 성공요인은 역시 박찬호였다. 그리고 은지원이었다.
1. 박찬호의 병뚜껑 신공
다시 한번 1박2일을 찾은 박찬호 효과는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160km의 강속구를 던지는 괴물투수가 탁구대결에서 어리버리 김종민의 공을 받아치지 못하고 시종일관 어리숙한 모습은 인가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허리가 아파 앉아서 졸고 있는 은지원을 따뜻히 눕혀서 이불을 덥어주는 모습은 훈훈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1박2일을 시끄럽게 했던 것은 박찬호의 병뚜껑 신공이었다. 추운 날씨속에 졸지에 야외취침을 하게 된 강호동이 병뚜겅이 탁구대 끝 흰선에 걸치면 실내취침 해줄 것을 제안하고 박찬호가 한 번에 이를 성공한 것.
리얼 버라이어티의 재미는 연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포츠가 축구가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각본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리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리 흥미진진한 각본과 리얼에 가까운 승부를 앞세운 프로레슬링이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패떳의 시청률 하락에도 대본이 있다는 설과 조작된 연출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1박2일의 상승세는 계속 될 전망이다. 혹자는 박찬호의 병뚜껑 장면도 연출이라는 의문을 제기했지만 패떳이 종영하고 시즌2를 준비하는 마당에 1박2일은 그렇게 간이 크지못하다.
2. 멤버 전원 계곡 입수
무엇보다 이번 1박2일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누가봐도 추운 겨울 계곡의 얼음을 깨고 입수한 장면이었다. 그것도 박찬호 뿐만 아니라 멤버 전원이 해낸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무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추운 겨울 쌩쇼라 할 수도 있다. 연예인들이 돈 벌려고 별 짓을 다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나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감격에 겨웠다. 정말 뜨거운 입수였다. 아마 현역으로 군 생활을 한 남자라면 충분히 그 심정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인기를 위함이고, 시청률을 위함이고,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하지만 그들은 연예인이다. 군인도 아니고 굳이 도전하지 않아도 되는 연예인인 것이다.
그럼에도 장엄하게 -음악까지 정말 장엄했다.- 입수하는 그들에게는 새해를 맞는 자신을 위한 도전이 있었다. 자신과의 싸움. 분명 춥겠지만 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것이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던 것은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매년 저 얼음을 깨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미국에 홀로 가 고독한 마운드를 지켰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멤버들은 연예인임에도 함께 입수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곧 연출되지 않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감동이 되었다.
3. 입수의 히어로, 은지원
이러한 감동의 근원지에는 은지원이 있었다. 분명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다. 박찬호도 이들을 이끌어 가야하는 강호동도 아닌 은지원이다. 그리고 그 뒤를 MC 몽이 따랐다. 1박2일의 가장 천덕꾸러기인 이들의 입수는 나머지 멤버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입수 전 화면에서도 가장 입수를 꺼렸던 이들이기에 감동은 배가 되었다.
은지원의 입수장면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자신의 입수를 과시하거나 인기를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새해에 대한 도전이었고, 나약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기필코 승리하고 싶은 투사의 모습이었다. 만약 강호동이었다면, 주위의 시선을 끌고 시청자들을 향한 멘트를 한 뒤 입수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은지원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정말 은지원이 멘트를 시작했을때 카메라는 다른 멤버를 향해 있었다.- "2010년 우리 1박2일 팀들, 제작진들 아무 사고없이 한해 잘 마무리하길 바란다"는 멘트와 함께 계곡에 몸을 담궜다.
은지원의 뒤를 이어 MC몽, 이승기 등 각 멤버들이 차례로 비장한 각오의 얼굴로 입수할 때 눈에 띄었던 것이 김C였다. 마치 온천에 들어가듯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입수하는 그의 모습에 그제서야 웃음이 나왔다.
4. 감동의 코드가 다른 1박2일
MBC 일밤에 김영희 PD가 돌아와 첫방부터 두자리 수의 시청률을 기록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도 그럴 수 있는 것이 그가 누구인가? 느낌표, 책을읽자, 눈을 떠요 등 감동+버라이어티의 장인으로 무릎팍 도사에도 출연한 스타 PD이 아닌가.
하지만 그의 말이 무색하게 일밤은 5%의 시청률에 허덕이고 있다. 그가 새로 가지고 나온 '단비'는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들어주고 우리시대 아버지를 조명하는 등 분명 훈훈하고 감동의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왜 그럴까?
1박2일이나 무한도전이 보여주는 훈훈함과 감동은 김영희표 감동과는 다르다. 무슨 말이냐면 과거 '가시고기'나 영화 '편지'는 분명 많은이들의 눈물을 자아내며 감동을 준 작품들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지금의 시청자들은 그런 체루성 프로그램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김영희표 감동은 분류하자면 의도적으로 눈물을 자아내기 위한 체루성 프로그램이다. 1박2일의 힘은 연출하지 않고도 감동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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