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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창덕궁에서 발견한 고궁 전통문양의 아름다움

여행스토리/국내

by 하얀잉크 2012. 11. 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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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창덕궁의 가치에 새삼 놀라다

 

지난 주말 우연찮게 창덕궁으로 가족들과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딸아이를 데리러 간다고 외출했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 이대로 집에 돌아오기엔 아까워 급 방향을 틀게 되었는데요. 카메라가 손에 없었던 것이 후회될만큼 10년 만에 다시 찾은 창덕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이 글을 여행이 아닌 교육 카테고리로 발행하게 된 이유도 창덕궁의 가을 정취보다는 고궁의 미와 전통문양이 교육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고궁은 여행 보다는 배움의 공간이 맞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창덕궁에 가보셨나요? 사실 서울에 살면서도 창덕궁을 비롯해 5대궁에 가본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가봤더라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본 것이 대부분이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시절엔 그것이 전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거든요. 경희궁은 아직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놀러와에 출연한 유홍준 교수의 따끔한 한마디

 

며칠 전 예능 프로그램인 놀러와에 유홍준 교수가 게스트로 출연했죠. 놀라운 이야기 보따리를 많이 풀어주셨지만 문화재청장 시절에 고궁 입장료를 인상한 장본인이 자신임을 밝히며 당시 일화를 이야기 했습니다.

 

 

 

 

유홍준 교는 당시 고궁 입장료가 천원이었는데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싼 입장료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보통 극장료와 비슷한 2-3만원 수준이라고 했죠. 그래서 5천원으로 인상안을 내고 결국 3천원으로 인상이 된 것이죠.

 

"입장료에 따라 관람 태도가 달라진다. 돈을 내고 들어가면 더 진지하게 문화재들을 관람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국립중앙박물관을 무료로 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지금 박물관 가면 유치원, 초등학생 천국이 됐다. 더이상 한 나라의 문화를 보여주는 품위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작은 전시회를 준비하는 곳에서는 입장료를 받기가 더 힘들어진다. 공짜가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문화는 그 가치에 맞는 돈을 내고 보는 것이 맞다"

 

정말 공감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은 낸 만큼 보게 되는 것이죠. 물론 2천원 더 올랐다고 마음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가치를 알게 되니 3천원도 적다 느껴집니다.

 

 

 

창덕궁을 태종이 건립한 이유는?

 

 

 

 

창덕궁은 아시다시피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5대 궁 중의 하나인 자랑스러운 고궁입니다.

5대궁은 다 아시죠? 운현궁으로 아시는 분들은 잘못 알고 계신거에요 ^^

 

* 조선 5대궁

  • 경복궁(정궁)
  • 창덕궁(경복궁의 이궁이자 조선후기의 정궁)
  • 창경궁(창덕궁의 부속시설이다가 조선후기 정궁으로 편속)
  • 덕수궁(광해군이 정궁으로 사용하던 것을 고종이 정궁으로 쓰며 대한제국 선포)
  • 경희궁(창덕궁과 창경궁이 정궁이던 조선 후기의 이궁)

 

 

창덕궁은 태종 임금시대 경복궁의 이궁으로 건립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궁을 지은 이유에 대해서는 경복궁이 풍수리지가 좋지않았다는 등의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그 배경에는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의 무리를 누리고 왕위에 오른 태종이 자신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가장 설득력을 지닙니다.

 

경복궁의 자리부터 설계까지 정도전이 했으니 그것을 비판하며 새롭게 자신의 궁을 세웠다는 것이죠. 어쨌거나 당시 아름다운 전통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고 후원은 우리나라 궁의 대표적인 정원으로 꼽힙니다.

 

 

 

 

이 글에서는 전체적인 창덕궁 보다는 부분적인 창덕궁에 집중했습니다. 건축물의 전통문양과 양식, 그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고궁 전통기와의 아름다운 단청

 

역시 고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아름다움은 전통기와입니다. 두서 없이 아름다운 광경을 폰카에 담았습니다. 가장 중심건축물인 인정전은 뒤에 따로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청기와를 보고 있으면 단청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붕의 올라가는 곡선도 아름답구요.

마지막 건물은 기둥위에 지어져 있네요. 후원 올라가는 왼편에 자리잡은 희우루입니다.

 

 

 

 

연인들이 함께 사진 찍는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네요. 저 아저씨만 없으면 좋겠다 싶어 나오시길 기다렸는데 다리가 아프셨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질 않으시는 아저씨... ^^; 

 

 

 

 

 

 

대조전은 임금과 왕비의 침전이었던 건물입니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비를 배려함인지 지붕의 꽃무늬와 레이스를 연상케 하는 장식이 눈에 띄네요.

 

 

 

 

지붕마다 보면 동물이나 사람을 형상하는 듯한 조각장식이 있습니다.

어디에 설명이 없어 궁금증을 해소하지는 못했지만 건물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보니 그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문에서 발견하는 전통의 미

 

또 하나 창덕궁을 거닐며 느낀 것이 아름다운 전통 문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창덕궁이 조선 후기에 정궁으로 쓰였기 때문에 점차 외래양식이 가미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편전으로 사용됐던 희정당에는 서양식 가구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 서양식 문고리의 여닫이 문도 보입니다.

 

 

 

 

 

 

낙선재는 조선 마지막 황실의 가족들이 거처하기도 했던 공간입니다.

왕실을 끝까지 지키려 하셨던 순정효황후 윤비나 영친왕과 덕혜옹주 모두 마지막 생을 마친

공간이기도 합니다. 살펴보면 원형의 독특한 문의 양식과 칸막이 처럼 문을 내리기도 하고

올릴 수 있었던 조상의 지혜를 보게 됩니다.

 

 

 

 

 

이런 바깥문에도 관심이 가더라구요.

 

 

 

국보 인정전의 위엄한 자태

 

창덕궁에도 국보가 있죠. 바로 궁궐의 대표적인 공간이자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국가의 중요 행사가 치뤄졌던 인정전(국보225호)입니다. 경복궁으로 따지면 근정전과 같은 것이죠.

 

 

 

 

 

 

 

 

 

 

 

 

 

 

 

 

 

 

 

1박2일의 퀴즈로 나왔던 드므도 보입니다.

 

 

 

인정전 용상 위의 백열전구가?

 

인정전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임금의 위엄을 나타내는 용상이 보이고 그 위로 엥? 백열전구가 보입니다. 조선 후기 정궁이었으니 당연한 일인가요? 왕실은 가장 먼저 선진문명이 도입되는 공간이기도 하니까요. 기록을 보니 1908년에 전기시설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바닥은 마루바닥이고 창에도 아름다운 장식들이 수를 놓습니다.

 

 

 

 

 

소나무 한 그루도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병풍처럼 둘러진 소나무들.

 

 

 

 

큰 아이는 고궁 둘러보는 것이 따분하다고 하지만 둘째는 잘도 뛰어다녔습니다.

이 아이들도 지금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철이 들고 머리가 굵어지면 이 공간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겠지요.

 

아쉽지만 후원은 모두 매진이라고 하여 발길을 돌려야 했는데 다음에는 꼭 해설가 선생님 따라다니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 창덕궁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는 창덕궁 홈페이지 http://www.cd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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