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아니고 가방 맞습니다. 제목 그대로 가방따위와의 재회가 얼마 반가운지 경험하신 분들만 아실 겁니다. 지난 주말 딸아이와 함께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의 일입니다.
피곤했는데 마침 자리가 있어 둘 다 자리에 앉아 다리를 두들겨가며 정겹게(?) 가고 있는데 뜬금없는 안내방송이 귓전을 때렸습니다.
지하철에 두고 내린 가방
"다음 역은 숙대입구 숙대입구입니다...."
엥? 당고개행을 타야하는데 반대로 탄 모양입니다. 문이 열리자 서둘러 아이를 챙겨 내렸습니다. 그리고 유유히 반대편 플랫폼으로 가는데 앗..... 가방을 놓고 내렸음을 깨달았습니다. 노트북과 약간의 현금, 아이폰 악세사리 등이 들어있는 가방이라 아찔했습니다. 어이없게도 아이의 우산과 내 보잘 것 없는 우산은 챙겼더군요.
열차정보 몰라 절망적
개찰구에 계신 직원분께 사정을 이야기 하고 안내받아 숙대입구역 고객센터로 갔습니다. 김연형 과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하지만 종착역이 어디인지, 몇호차인지, 몇호칸인지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어 절망적이었습니다.
다행히 내린지 얼마되지 않아 잃어버린 것을 알았기에 시간대를 추적해 열차가 오이도행 4645 열차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달리는 열차를 세우고 수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야 합니다. 플랫폼을 다시 내려가보고 회상하니 9-1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추적에 들어갔습니다. 과장님께서는 도착예정 역에 전화를 걸어 선반위를 확인하게 하셨고, 저는 재빨리 트위터를 통해 동일한 열차에 타고 계신 분을 찾았습니다. 비록 시간은 초조하게 흘렀지만 찾을 수 있을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전에도 한번 카메라를 분실했다가 찾은 적이 있거든요.
3년 전의 같은 기억
기억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DMB에 심취해 있던 저는 TV프로그램에 정신팔려 회사 카메라 가방을 지하철 선반에 태연히 놓고 내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캐논 최신 기종 바디에 렌즈도 두 개나 되니 카메라 가방 내용물만 200만원이 넘었습니다.
한 달치 월급을 한 번에 날렸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아찔 하더군요. 뻔히 카메라 가방인 것이 보이니 쉽게 표적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그때는 고객센터도 모르고 역무원 직원분께 4호선 지하철역 전화번호 리스트를 받아 제가 직접 전화를 돌렸습니다.
"8-1 칸에 검정색 카메라 가방 있는지 확인 좀 해주세요."
정성이 통했는지 안산역에서 찾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의 기쁨이란 글로 표현이 안되네요.하지만 그땐 그때이고 지금은 또 다른 상황입니다.(이걸 액자구성이라고 하죠? ^^) 더구나 절망적인 것은 도착예정역마다 찾지 못했다는 전화만 왔습니다. 아이는 집에 가고 싶다고 하고 기대했던 트위터도 소식이 없고 포기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종착역까지는 기다려야겠다 싶어 이왕 기다린 것 아이에게는 미안했지만 조금 더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아빠를 심정을 이해했는지 의젓하게 기다려주었습니다. 하필 열차가 가장 먼 종착역인 오이도행이라 시간은 더디게만 갔습니다.
세상은 아직 밝습니다 ^^
그리고 얼마 후...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네, 그래요? 네 맞습니다"
전화를 받는 김연형 과장님의 얼굴이 환히 빛납니다.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 그것이 나의 일이길 빕니다. 그리고 제 바람대로 가방을 찾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 정말 기뻤습니다. 뉴스에서는 험학한 일들만 가득하지만 세상이 밝아보이고 아직 믿을만한 사회라 생각되더군요. 막 긍정적 사고 유발... ^^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시간도 늦고 아이도 있어 다음날 오전에 가방을 찾으러 오이도로 떠났습니다. 정말 멀더군요. 오이도... 2시간 족히 걸렸습니다. 왕복 4시간의 압박.... 뜨아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되찾은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지루하지 않네요. ㅎㅎ
고마운 분들...
난생 처음 오이도에 가보았는데 역무원에 정상효 선생님이 친절하게 맞아주셨습니다. 가방도 확인시켜 주시고 앞으로 절대 중요한 물건은 선반에 올리지 말고 몸에 지니고 있으라는 말씀도 일러주셨습니다. 인상이 얼마나 좋으신지 참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아쉽게도 근무시간이 아니라 어제 직접 가방을 찾아주신 차성희 님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공간을 빌어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 당황한 저를 안심시키고 역마다 전화해서 가방을 찾게 해주셨던 숙대입구 역의 김연형 과장님, 제 일처럼 열차에 뛰어내려가 가방을 찾아주신 오이도 역의 공익근무요원 차성희 님,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못했지만 RT날려주고 트위터에서 함께 마음써준 님들, 그리고 졸리고 힘들었을텐데 끝까지 아빠를 이해하고 기다려준 사랑스런 나의 딸래미... 모두 감사합니다. 아 가장 중요한 분들이 빠졌군요. 내 물건이 아니기에 손대지 않고 탐하지 않았던 우리 모두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유실했다면...
두 차례 겪었음에도 물건을 잃어버리면 당황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물건을 유실했을때 대처상황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 빠른 조치와 물건의 위치를 생각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련글 올립니다. 한번들 보고 기억하세요.
지하철에서 유실물, 두 가지만 기억하자
결코 잃어버렸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아직 우리사회는 믿고 살만한 곳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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