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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스캔들, 청춘-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

문화 리뷰/TV 연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0. 2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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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이 바쁜 마흔입니다.

지금까지 드라마를 보면서 살 여유가 없어서

또는 드라마를 보는 취향이 아니라서

한번도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일이 없을 뿐더러

최근 1~2년 동안은 아예 드라마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18회까지 보고 나니

봇물 터지듯 생각이 넘쳐나네요.

 

처음엔 우연히 성균관스캔들 1회를 보았습니다.

보면서 윤희를 통해 조선시대 여성의 삶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글을 아는 여성의 삶이란

신사임당처럼 훌륭한 어머니가 되길 소망하거나

허난설헌처럼 비운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죠.

그동안 드라마나 소설에서 다뤄졌던 남장여자가

가난이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시적으로 개인이 택한 것이었다면

'성균관 스캔들'의 김윤희는 조선이라는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깨어있는 여성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관심이 갔습니다.

 

김윤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김윤희가 그동안 드라마나 소설에서 보여주었던

전형적인 ‘캔디’와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캔디’는 가난이라는 환경 속에서

밝고 귀여운 성격으로 주위의 남성에게 사랑받습니다.

그런데 이 전형적인 ‘캔디’들은 뭔가 부족한 인간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오직 성격 하나로 극복해보려 합니다.

주위의 남성들은 그런 그녀를 도와줍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캔디’들은 민폐형 캐릭터입니다.

고난의 상황을 혼자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지능이나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없는

백치미 넘치는 표정으로 백마탄 왕자를 기다립니다.

김윤희 또한 기존 ‘캔디’들처럼 가난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김윤희는 뛰어난 능력과 자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해나갑니다.

김윤희는 봉건적 조선을 살아가는

근대적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흥미가 더 갔습니다.

 

드라마를 계속 볼 자신이 없어서

바로 원작을 구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결과는 실망이었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이선준은 너무나 완벽하고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김윤희는 이선준을 보자마자 반하고 맙니다.

여중시절 한 두번 읽어보았던 로맨스소설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비현실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들이

소설의 매력적인 상황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결국 드라마를 계속 보기 시작했습니다.

원작과 달리 드라마에 나오는 이선준은

완벽한 남자가 아닙니다.

원칙과 논리, 지식의 상아탑 속에서

곱게 자란 노론 영수의 아들입니다.

현실의 눈으로 볼 때 답답하고 연약하며

비인간적일 정도로 차가운 사람입니다.

원작의 이선준보다 드라마에 나오는 이선준 캐릭터가

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그런 현실성 때문입니다.

원칙을 고수하는 천재란 현실 속에서는

이선준과 같은 '왕따'가 되고 만다는 것을,

타인에게 정죄와 상처를 주게 된다는 것을

이선준은 잘 보여줍니다.

 

사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세 명의 남자

가랑 이선준, 걸오 문재신, 여림 구용하는

각각 원칙(이성)과 본능(감성), 자본(취향)을 대표합니다.

근대가 이성과 논리, 합리의 시대였다면

분명 현대는 본능과 감성의 시대이고 자본과 취향의 시대입니다.

이선준과 같이 원칙과 법도를 고수하는 이성은

현대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원칙을 무시하고 본능과 감성, 자본과 취향 만이 우선시되는 현대가

과연 행복한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문재신과 구용하가 원칙과 이성을 버리고

본능과 감성, 자본과 취향을 따라 성균관에서 지낸 것은

그들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서가 아니라

불행하고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재신과 구용하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기존 세대, 조선의 현실을 말합니다.

이들에게 아버지는 존경과 희망의 대상이 아니라

경멸과 부정의 대상입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20대들이

대한민국의 비전과 희망을 말하기보다

개인의 본능과 감성, 자본과 취향을 따라 사는 것도

존경할만한 아버지를 가지지 못해서가 아닐까요?

성공을 위해 기회주의적인 삶을 사는 아버지들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는 청춘들에게 삶의 원칙이나 지켜야할 양심을

생각하는 것은 무리일테니 말입니다.

 

문재신과 구용하에 비해 이선준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부족함 없는 가정환경과 존경스러운 아버지를 가졌습니다.

이선준의 반대편에 김윤희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가난한 가정환경 속에서

12세부터 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남자로 살아야 했던 사람.

이선준과 김윤희의 만남은 그래서 더 흥미롭습니다.

책상물림이었던 이선준에게 김윤희는

처음으로 마음을 나누고 싶은 벗이었고

자신의 벽을 깨게 해준 생경한 현실이었습니다.

김윤희에게 이선준은 자신을 믿어준 첫 사람이었죠.

이선준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기적을 꿈꾸게 해줍니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 사람은

비슷한 수준의 지적 능력과 근성으로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점점 서로를 믿고 사랑하게 됩니다.

 

11회에서 김윤희는 말합니다.

성균관에서의 시간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겠다고 말입니다.

함께 했던 고민, 두려움, 기쁨을 기억하겠다고 말이죠.

그런 김윤희에게 이선준은 언제나 곁에 있으라고 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꿈꿀 때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면 불가능할 것 같은 것들이

가능할 것 같은 그들의 희망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드라마가 원작보다 더 잘 표현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만남과 이해, 사랑의 과정을 잘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스'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

자신의 벽을 허물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늘 18회에서 이선준이 한 말,

자신이 편안하게 성장했던 그 시간 동안

굶주림과 가난으로 남장을 하고

힘들게 장터를 헤매었을 윤희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말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깊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감인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조가 꿈꾸는 새로운 조선은

원칙과 이성, 본능과 감성, 자본과 취향...모두가 필요합니다.

특히 실용적인 관점을 가졌던 정조에게

자본과 취향, 과학의 눈을 가진 구용하는

어쩌면 새로운 조선의 '새로움'의 상징일 것 같습니다.

 

18회에서 이선준과 아버지는 정적이 됩니다.

이 드라마에서 이선준 캐릭터가 매력적인 것은

원칙과 이성의 잣대를 자신에게도 엄정하게 내린다는 것입니다.

격렬한 고통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설령 사랑하는 정인을 잃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원칙과 이성이 희망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일관성 있는 기준이 차별 없이 적용될 때입니다.

아마도 정조는 장부를 가져온 이선준에게서

그런 희망을 보았을 것 같습니다.

 

이제 2회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네 사람의 청춘은

각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오면서

새로운 조선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숨보다 소중한 벗을 얻었고

정인을 얻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을

벗과 함께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남은 2회에서 어떤 결말이 날 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조선을 꿈꾸는 청춘들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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