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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일, 본명 박재한으로 슈퍼스타k5 지원한 사연 인터뷰 보니

기자단-필진/CJ소셜리포터즈

by 하얀잉크 2013. 8. 17.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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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집 가수 한경일이 슈퍼스타k5에 도전하는 가요계 불편한 현실

 

슈퍼스타k5에 가수 한경일이 등장했다. 34살 경기도 안산에 사는 본명 박재한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를 심사위원은 물론 나 역시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박재한이란 이름은 몰라도 한경일은 알고 <내 삶의 반>이란 노래의 제목은 몰라도 "깊은 사랑이 죄라면"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곧 잘 따라할 수 있다.

 

그것이 5집 가수 한경일이 11년 동안 대중에게 알린 결과이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인지도라고 한다. 하지만 왕년에 활동했던 가수가 아니라 불과 올해 4월에도 싱글 앨범을 내고 활동한 가수에게 이 정도 인지도는 너무 치명적이지 않은가. 앨범도 5집이라 하지만 싱글앨범까지 포함하면 총 9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2003년 당시 윤도현 러브레터에 출연했던 한경일의 라이브 무대>

 

 

한경일이 슈스케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슈퍼스타k5에서는 악마의 편집 부활인지 잠깐 모습만 비치고 다음주를 기약하게 되었지만 방송에서 한경일은 슈스케에 지원한 이유에 대해 "가수가 되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나는 그래도 가수다라고 말하고 살아왔는데, 남들의 시선은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고 했다.

 

5집 가수가 슈스케를 통해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고 하니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 슈스케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 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는 아마추어들이 나오는 오디션을 가리지 않을 만큼 절박했을까?

 

그간 11년 동안 어떤 가수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노래해 왔는지 지난 언론과의 인터뷰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슈스케에 지원한 심정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한경일은 어떤 가수였을까? 한경일의 인터뷰 살펴보니

 

 

 

2002년 1집 앨범의 수록곡 '한사람을 사랑했네'로 얼굴을 알린 한경일은 2007년까지 매해 앨범을 내며 가수로서의 활동을 게을지 하지 않았다. 2003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에서 '내 삶의 반'이 히트하면서 발라드 가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전성기였다. 하지만 그것이 가수로 맛 본 마지막 희열이었다.

 

2007년 야심차게 일본 진출도 하고, <이별은 멀었죠>, <좋겠다> 등의 노래도 사랑받았지만 예전의 인기를 회복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대중으로부터 잊혀진다는 것이었다.

 

"4집이 말도 못하게 망했죠. 1집을 내고 망했으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일이라도 했을텐데…

미래가 없는 일에 내 청춘을 모두 허비한 것 아닌가 고민했죠. 최고를 바란 건 아니지만 다행히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패하고 나니 갈 길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돈이 없으니 친구들한테 소주 얻어 마시면서 백수로 지냈어요. 매형은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권유 했는데 중학교 1학년때부터 제가 한 거라곤 노래밖에 없어요."

<일간스포츠 인터뷰 중>

 

 

야심차게 준비한 4집 앨범이 망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말도 못하게 망했다고 했다. 백수로 지내면서 미래가 없는 일에 청춘을 허비한 게 아닌가 고민했다고 했다. 더이상 한경일표 발라드가 통하지 않았던 것일까?

 

 

"공을 들였던 4집 앨범인데 후속곡도 선보이지 못하고 활동을 접어서 많이 속상했죠. 그 이후로 공백기를 가지는 동안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어지고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살도 10kg이나 쪘죠"

<스포츠칸 인터뷰 중> 

 

 

다른 인터뷰를 보면 후속곡도 선보이지 못했다고 했다. 방송활동이 짧았다는 것은 대표곡이 반응이 없으면 바로 컷트 당하는 냉엄한 국내 가요계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히트곡이 없으면 쉽게 잊혀져 버리는 가요계가 아닌가. 차가운 대중들의 반응에 우울증이 왔고 수면제에 의존해 잠에 드는 횟수가 늘며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가수를 포기할 수 없었고 우여곡절 끝에 1년 뒤 5집 앨범을 들고 대중 앞에 섰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나서기 보다 뒤로 숨는 편이에요. 앨범마다 방송 활동도 짧게 했고요. 지난해 5집 앨범 때는 한 달 활동했어요. 팬에게는 3집 이후 4년 이상을 쉰 걸로 보일 거예요. 인지도가 낮을 만 하죠"

<한국일보 인터뷰 중> 

 

 

활동기간 한 달. 5집 앨범 역시 시원치 못했다. 4집 보다는 나았던 것인지 충격의 정도가 나아진 것인지 모르지만 스스로 인지도가 낮음을 인정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하지만 연이은 앨범의 실패로 그가 입은 내상은 심각했으리라...

 

 

 

 

 

 

한경일이 스스로 바라는 가수란?

 

가수가 되고 싶다며, 새롭게 도전하고 싶다던 그는 어떤 가수가 되고 싶었을까? 역시 그의 인터뷰에서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쉬는 동안 안경도 모자도 쓰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아무도 알아보질 못하더군요. 딱 한번어느 고 3수험생이 절 알아보고 "오빠 사인해 주세요"라고 하는데 정말 창피했죠.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알아보는 정도만 됐으면 좋겠어요"

 

<일간스포츠 인터뷰 중>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알아보는 정도의 가수. 참 소박한 바람이지만 5집 가수 한경일에게는 어려운 벽이었나 보다. 하긴 왕년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발라드의 황태자 조성모도 재기하지 못하고 대중에 잊혀지지 않으려 노래보다는 정글을 누비며 '파이널 어드벤처'에 출연하는 현실이 아닌가.

 

그럼에도 한경일 아니 박재한은 가수에 대한 끈을 놓치 못하고 있었다.

 

 

"이제 가수 데뷔 7년째예요. 10년까진 고민 않고 노래 부르기로 했어요. 그러다 정 안되면 가수를 포기하겠지만 음악 언저리에선 살려고요. 음악과 관련한 일이라도 하고 싶어요"

<일간스포츠 인터뷰 중> 

 

 

 

 

한경일이 슈퍼스타K5에 지원한 진짜 이유

 

인터뷰에서 말 한 10년이 넘었지만 한경일은 여전히 가수를 포기하지 못하고 <내 삶의 반>을 부른 인기가수 한경일이 아닌 안산에 사는 박재한으로 슈퍼스타k5에 지원했다. 가수를 포기하더라도 음악 언저리에서 살고싶다던 그가 마지막 도전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내 삶의 반>으로 인기를 누린 지 10년이 되었다. 더 이상 내가 왕년의 인기가수였다고 어필할 수도 없다. 그래서 다시 시작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그 외에 나는 정말 안되는 것인가 하고 심사위원들로부터 심사를 받고 싶었던 것이 한경일의 절박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혹자는 슈스케 인기에 기대 인기를 얻어보려는 수작이 아니냐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 비난은 가수의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한경일에게 향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예고에서 나왔지만 심사위원 이승철의 한 마디 "한번 가수는 영원한 가수다!!" 한경일이 되찾아야 하는 것은 인기가 아닌 가수로서의 명예와 자부심이다. 지금 한경일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이라는 사실~

 

아직 심사결과는 알 수 없지만 한경일은 잘해 낼 것이다. 지난 슈퍼스타k4에도 잊혀진 스타 죠앤이 출연해 엄격한 심사 속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한경일은 잘해 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를 가수로 자리매김 해 준 것이 가창력이었으니까 노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있지 않겠는가.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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